이번 글또 10기를 지원하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의 삶의 지도를 보여주세요! 라는 항목을 작성하게 되었어요.
지원하기 위해 필수로 작성해야하는 미션의 일부이지만, 왜 이러한 미션이 주어졌는지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어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 이십대를 전반적으로 회고하는? 느낌의 글이 될 것 같은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희미한 안갯속에서 걷다
제 인생의 삶의 지도를 이미지로써 떠올려보면, 아마 20대 초반이 되기 전까지 영역은 낡고 희미해져 빛바랜 느낌일 것 같아요.
그만큼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세상이 말하는대로,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주관없이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인 인생이었다고 느껴져요. 즐거운 기억도 많았지만, 인생에서 무언가 치열하게 노력한 기억도, 진심으로 무언가 바랬던 기억도 없는 것 같아 왜 내 학창시절은 이렇게 미적지근했던 걸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목적없이 학원과 집을 반복하며 평범한 학생으로써 지냈던 것 같아요.
처음 느껴본 후회의 맛
제 첫 번째 수험생활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실패였다고 생각해요.
그저 꿈도 목적도 없이 공부했으니, 좋은 말로도 열심히 했다고는 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수능이 끝난 뒤 처참한 성적표를 받고나서,
무엇을 위해 나는 공부를 해왔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망연자실함과 더불어 무엇이 잘못됨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재수라는 두 번째 수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재수를 하면서는 첫 번째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 었었나봐요. 21살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몰입이라는 것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목표했던 대학을 합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열심히 했다고 느꼈어요.
조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부하긴 했어도 현역시절 성적보다는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부모님의 추천으로 모 대학의 기계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어요, 목적없이 공부했고, 충분한 확신없이 선택한 학과가 인생에서 큰 좌절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말이죠.
왜 기계공학이라는 학문을 배워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어요. 딱딱하기만 한 기계공학과의 4대 역학 학문은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학문을 경험하고 싶은 제게는 흥미도가 거의 0에 수렴했기 때문이죠. 이때 정말 후회를 했고, 새로운 목표를 찾고자 다짐했습니다.
첫 번째 목표를 세우다
기계공학이라는 학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지루하고 딱딱한 삶이 아니라 보다 더 넓고 다채로운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느낀 저는 해외에서 무언가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일문 계열을 전공하고 있던 누나의 영향을 받아 일본어 과외를 받았습니다. 여러번 교습받지는 못했어도, 그때의 경험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싶다는 굳은 마음으로 이끌어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해야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결정했습니다.
도약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 군생활을 돌이켜보면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군대에서 무언가 특별히 많은 경험을 하고 배울 수 있었다, 라기보다는
군대라는 제한적인 환경을 통해, 좀 더 인생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사색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년 9개월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 속에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었어요. 열심히 목표했던 유학 생활을 위해
틈틈히 공부하며 일본어 자격증도 습득하고, 영어공부도 하면서 처음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설렐 수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학공부를 하면서 만큼은 지루하다 라는 감정을 별로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아요. 남들은 재미없다는 한자 공부를 하면서도 획 하나 하나를 느끼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적성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구나?
평소 적성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왔지만, 정확히 나의 적성이 무엇이다라고 답할 수 없었던 저는 해당 단어의 표면적인 의미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군 생활 도중 어학공부에 매진하며, 확실히 제 적성은 어학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확신이 있다면 분명 전역 후 유학생활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 예상하시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학공부를 하며 제 적성이 어학에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이것이 유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어요. 결국 어학은 수단일 뿐 대학을 가기위해선 결국 특정 전공을 선택해야한다는 점이 유학 생활에 대한 불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집안에서의 반대와 더불어 이러한 불확신으로 유학은 포기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작은 고비를 넘다
수 년간 준비했던 일을 포기하면서 느낀 감정은 의외로 후련하다 였어요. 준비중에도 내심 이런 저런 고민들이 있었어요 .
유학생활도 결국 대학을 입학해야 하는 일인데 과연 확신을 갖고 다시 수험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합격한 뒤에는 어떡해야하지? 등의 고민들이 뒤따랐던 것 같아요. 오히려 부모님이 반대해주셔서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찌됐건 빠른 포기덕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유학을 포기하니 새로운 목표 설정도 필요했어요. 전역 후 복학했을 당시, 막 4차 산업에 관한 트렌드들이 떠오르기 시작할 시기였고, 제 적성을 살리며 미래 산업과 가까운 전공을 선택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설정한 새로운 목표는 산업공학과가 존재하는 대학의 편입학 시험이었습니다. 산업공학이란 학문 특성상 다양한 전공을 다루기에 폭넓은 산업 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제가 재학중이던 대학의 산업공학과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습니다 ㅜ_ㅜ.
그렇게 2학년을 재학하며 휴학없이 편입학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수험 생활로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2학년 재학과 수험생활을 병행하였고, 편입학 특성상 수학과 영어 딱 두 과목만을 시험 범위로하기에 수능시험보다 복잡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름을 깨닫다
평소 수학은 꽤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어학공부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기에 편입학 공부는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운좋게 목표하던 대학의 산업공학과 편입학에 성공하고 난뒤 제 앞날은 제가 그리던 이상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AI, 머신러닝 ,데이터마이닝 등의 산업 키워드들이 떠오르던 시기였고, 산업공학과는 마음먹기에 따라 이러한 것들과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습니다만, 고급 응용통계 수업을 듣고 나서 제가 생각하던 이상과는 조금 다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접해본 적도, 통계학에 매력을 느껴본적도 없는 저는 이대로 또 한번의 실패를 겪게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다
하지만 전공과 진로가 100%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내 적성에 맞는 일만 찾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는 불과 1-2년이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한참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4학년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과 IT업계 붐이 일어나면서 개발자에 대한 사회적 인기가 치솓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를 지켜보며, 개발자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 직업이 왜 그렇게 급격히 인기가 올라갔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궁금해졌고, 프로그래밍은 컴퓨터와 대화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방법이라는 접근법 하에 웹 프론트엔드 개발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프론트엔드 엔지니어가 되자
저는 의사결정에 있어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세웠을 때도, 가족이나 주위 지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했을 당시도, 가까운 지인이 웹 프론트엔드 개발을 하고 있었기에 이를 지켜보며 흥미로운 분야라고 느낄 수 있었죠. 특히 프론트엔드 개발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고, 자바스크립트라는 언어가 주는 흥미로움은 과거 어학공부를 할 때 느꼈던 설렘을 여전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기대되는 앞으로의 여정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지 1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 프론트엔드 개발이란 영역은 여전히 흥미롭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감상은 작년과 사뭇 다릅니다.
제가 느낀 개발자란 무언가를 개발하는 사람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프로그래밍이란 도구를 매개로 풀어내는 것일 뿐,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가깝다. 이것이 제가 올해 느낀 감상입니다.
2년차, 3년 차를 거듭하며 그 감상이 충분히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을 깨닫고 나니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프론트엔드 개발을 넘어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앞으로는 좀 더 예리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어야겠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의 지도를 그려보고나니 제 이십대 초반과 그 이후는 인생에 있어 하나의 큰 변곡점이 존재하는 것 같네요.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점은, 적어도 변곡점 이후의 삶에선 후회스럽지 않을 정도로 노력했다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 자신 안에서는 진심을 다해 노력했던 경험들이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돌아왔던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10년 뒤 다시 삶의 지도를 그려보았을 때 지금과 비슷한 감상을 말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글또 10기를 지원하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의 삶의 지도를 보여주세요! 라는 항목을 작성하게 되었어요.
지원하기 위해 필수로 작성해야하는 미션의 일부이지만, 왜 이러한 미션이 주어졌는지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어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 이십대를 전반적으로 회고하는? 느낌의 글이 될 것 같은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희미한 안갯속에서 걷다
제 인생의 삶의 지도를 이미지로써 떠올려보면, 아마 20대 초반이 되기 전까지 영역은 낡고 희미해져 빛바랜 느낌일 것 같아요.
그만큼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세상이 말하는대로,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주관없이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인 인생이었다고 느껴져요. 즐거운 기억도 많았지만, 인생에서 무언가 치열하게 노력한 기억도, 진심으로 무언가 바랬던 기억도 없는 것 같아 왜 내 학창시절은 이렇게 미적지근했던 걸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목적없이 학원과 집을 반복하며 평범한 학생으로써 지냈던 것 같아요.
처음 느껴본 후회의 맛
제 첫 번째 수험생활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실패였다고 생각해요.
그저 꿈도 목적도 없이 공부했으니, 좋은 말로도 열심히 했다고는 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수능이 끝난 뒤 처참한 성적표를 받고나서,
무엇을 위해 나는 공부를 해왔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망연자실함과 더불어 무엇이 잘못됨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재수라는 두 번째 수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재수를 하면서는 첫 번째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 었었나봐요. 21살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몰입이라는 것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목표했던 대학을 합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열심히 했다고 느꼈어요.
조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부하긴 했어도 현역시절 성적보다는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부모님의 추천으로 모 대학의 기계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어요, 목적없이 공부했고, 충분한 확신없이 선택한 학과가 인생에서 큰 좌절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말이죠.
왜 기계공학이라는 학문을 배워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어요. 딱딱하기만 한 기계공학과의 4대 역학 학문은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학문을 경험하고 싶은 제게는 흥미도가 거의 0에 수렴했기 때문이죠. 이때 정말 후회를 했고, 새로운 목표를 찾고자 다짐했습니다.
첫 번째 목표를 세우다
기계공학이라는 학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지루하고 딱딱한 삶이 아니라 보다 더 넓고 다채로운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느낀 저는 해외에서 무언가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일문 계열을 전공하고 있던 누나의 영향을 받아 일본어 과외를 받았습니다. 여러번 교습받지는 못했어도, 그때의 경험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싶다는 굳은 마음으로 이끌어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해야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결정했습니다.
도약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 군생활을 돌이켜보면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군대에서 무언가 특별히 많은 경험을 하고 배울 수 있었다, 라기보다는
군대라는 제한적인 환경을 통해, 좀 더 인생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사색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년 9개월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 속에서,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었어요. 열심히 목표했던 유학 생활을 위해
틈틈히 공부하며 일본어 자격증도 습득하고, 영어공부도 하면서 처음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설렐 수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학공부를 하면서 만큼은 지루하다 라는 감정을 별로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아요. 남들은 재미없다는 한자 공부를 하면서도 획 하나 하나를 느끼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적성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구나?
평소 적성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왔지만, 정확히 나의 적성이 무엇이다라고 답할 수 없었던 저는 해당 단어의 표면적인 의미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군 생활 도중 어학공부에 매진하며, 확실히 제 적성은 어학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확신이 있다면 분명 전역 후 유학생활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 예상하시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학공부를 하며 제 적성이 어학에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이것이 유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어요. 결국 어학은 수단일 뿐 대학을 가기위해선 결국 특정 전공을 선택해야한다는 점이 유학 생활에 대한 불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집안에서의 반대와 더불어 이러한 불확신으로 유학은 포기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작은 고비를 넘다
수 년간 준비했던 일을 포기하면서 느낀 감정은 의외로 후련하다 였어요. 준비중에도 내심 이런 저런 고민들이 있었어요 .
유학생활도 결국 대학을 입학해야 하는 일인데 과연 확신을 갖고 다시 수험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합격한 뒤에는 어떡해야하지? 등의 고민들이 뒤따랐던 것 같아요. 오히려 부모님이 반대해주셔서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찌됐건 빠른 포기덕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유학을 포기하니 새로운 목표 설정도 필요했어요. 전역 후 복학했을 당시, 막 4차 산업에 관한 트렌드들이 떠오르기 시작할 시기였고, 제 적성을 살리며 미래 산업과 가까운 전공을 선택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설정한 새로운 목표는 산업공학과가 존재하는 대학의 편입학 시험이었습니다. 산업공학이란 학문 특성상 다양한 전공을 다루기에 폭넓은 산업 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제가 재학중이던 대학의 산업공학과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습니다 ㅜ_ㅜ.
그렇게 2학년을 재학하며 휴학없이 편입학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수험 생활로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2학년 재학과 수험생활을 병행하였고, 편입학 특성상 수학과 영어 딱 두 과목만을 시험 범위로하기에 수능시험보다 복잡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름을 깨닫다
평소 수학은 꽤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어학공부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기에 편입학 공부는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운좋게 목표하던 대학의 산업공학과 편입학에 성공하고 난뒤 제 앞날은 제가 그리던 이상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AI, 머신러닝 ,데이터마이닝 등의 산업 키워드들이 떠오르던 시기였고, 산업공학과는 마음먹기에 따라 이러한 것들과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습니다만, 고급 응용통계 수업을 듣고 나서 제가 생각하던 이상과는 조금 다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접해본 적도, 통계학에 매력을 느껴본적도 없는 저는 이대로 또 한번의 실패를 겪게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다
하지만 전공과 진로가 100%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내 적성에 맞는 일만 찾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는 불과 1-2년이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한참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4학년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과 IT업계 붐이 일어나면서 개발자에 대한 사회적 인기가 치솓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를 지켜보며, 개발자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 직업이 왜 그렇게 급격히 인기가 올라갔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궁금해졌고, 프로그래밍은 컴퓨터와 대화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방법이라는 접근법 하에 웹 프론트엔드 개발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프론트엔드 엔지니어가 되자
저는 의사결정에 있어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세웠을 때도, 가족이나 주위 지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했을 당시도, 가까운 지인이 웹 프론트엔드 개발을 하고 있었기에 이를 지켜보며 흥미로운 분야라고 느낄 수 있었죠. 특히 프론트엔드 개발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고, 자바스크립트라는 언어가 주는 흥미로움은 과거 어학공부를 할 때 느꼈던 설렘을 여전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기대되는 앞으로의 여정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지 1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 프론트엔드 개발이란 영역은 여전히 흥미롭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감상은 작년과 사뭇 다릅니다.
제가 느낀 개발자란 무언가를 개발하는 사람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프로그래밍이란 도구를 매개로 풀어내는 것일 뿐,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가깝다. 이것이 제가 올해 느낀 감상입니다.
2년차, 3년 차를 거듭하며 그 감상이 충분히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을 깨닫고 나니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프론트엔드 개발을 넘어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앞으로는 좀 더 예리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어야겠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의 지도를 그려보고나니 제 이십대 초반과 그 이후는 인생에 있어 하나의 큰 변곡점이 존재하는 것 같네요.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점은, 적어도 변곡점 이후의 삶에선 후회스럽지 않을 정도로 노력했다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 자신 안에서는 진심을 다해 노력했던 경험들이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돌아왔던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10년 뒤 다시 삶의 지도를 그려보았을 때 지금과 비슷한 감상을 말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